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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 읽기] 룰 브레이커의 세상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자기가 직접 운전하는 차량을 6개월 마다 바꾸는 버릇으로 유명했다. 그가 싫증을 잘 내거나 자동차광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의 교통법에 따르면 새로 구입한 차는 6개월까지 임시 번호판을 달고 다닐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인 주차공간에 주차하곤 했는데, 남들이 차를 알아보지 못하게 그랬다는 것.   이런 태도는 스티브 잡스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많은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법에 허술한 구멍을 이용하거나, 치러야 하는 대가보다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면 내놓고 법을 어기는 방법을 선택해서 사업을 확장한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법을 어기기로 유독 악명이 높은 우버의 경우 경찰이 영장을 들고 사무실을 급습할 경우 범법 사실을 빨리 삭제할 수 있는 ‘킬 스위치’까지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는 이번 미국 선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가 퍼뜨린 무수한 거짓말 외에도, 그의 당선을 도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선거 운동 막바지에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권자들에게 추첨을 통해 100만 달러 상금을 주는 이벤트를 매일 진행했다. 명목상으로는 총기 소지권과 관련한 청원에 서명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추첨이었지만, 누가 보기에도 돈으로 유권자를 사는 행동이었다.   결국 그 주의 복권법에 저촉되어 불법 지적을 받자, 사실은 추첨이 아니었고 내부적으로 선정한 사람들에게 준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법을 무시하거나 허점을 찾아내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당선만 되면 괜찮다는 그의 바람대로 트럼프는 당선되었고, 트럼프는 그 보답으로 머스크를 정부에서 중용할 계획이다. 법을 무시하는 실리콘밸리의 마인드가 앞으로 4년 동안 워싱턴에 빠르게 퍼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브레이커 도널드 트럼프 장애인 주차공간 일론 머스크

2024-11-18

[디지털 세상 읽기] 워싱턴과 빅테크, 짧은 선거 역사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20년 전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은 워싱턴에 있는 연방 정부와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그랬던 미국 정부가 테크 기업들과 가까워진 건 2008년 대선 때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스마트폰 블랙베리를 들고 다니면서 테크 기업의 응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오바마 후보에 거액을 후원했을 뿐 아니라, 선거 운동 본부에 테크 관련 인력 지원과 기술적 자문을 하면서 실리콘밸리와 백악관이 가까워진 첫 사례가 되었다.   8년 후인 2016년 대선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소셜미디어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이를 이용한 선거운동도 활발했지만,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미국 선거 개입에도 소셜미디어가 동원되었다. 테크 기업들은 석유, 자동차 등 전통적인 산업과 마찬가지로 적극적 로비를 통해 워싱턴과 가까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시 8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유권자들은 테크 기업의 노골적 선거 개입을 목격하고 있다. 스페이스X를 통해 정부와 방위산업 계약을 맺은 일론 머스크는 추첨을 통해 매일 100만 달러를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뿌리고 있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자신이 소유한 워싱턴포스트(WP)가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는 사설을 게재하지 못하게 막았다. 분노한 독자들이 구독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베조스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사업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것이다. 20년 전과 달리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얻을 것도, 잃을 것도 많아졌다는 얘기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워싱턴 빅테크 선거 역사 선거 개입 선거 운동

2024-11-03

[디지털 세상 읽기] 컴퓨터학과 교수의 걱정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는 스탠퍼드와 함께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기 가장 좋은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양질의 인력 확보에 혈안이 된 빅테크 기업들은 심지어 인턴들에게도 웬만한 기업의 정직원 수준의 보상을 주면서 구애에 열심이었다. 그러니 버클리에서는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로 넘쳐났고, 학교에서는 수업을 늘려야 했다.   그런데 최근 그 학교 컴퓨터학과 제임스 오브라이언 교수가 자신의 링크드인에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버클리의 컴퓨터학과 졸업생들이 취업을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글을 썼다. 과거에는 성적이 나쁜 학생들도 손쉽게 직장을 구했는데, 요즘은 학점이 가장 좋은 학생들도 졸업을 앞두고 아무런 오퍼를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한단다.   오브라이언 교수의 진짜 걱정은 이 추세가 앞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다. 그가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실험적인 프로젝트 대신 당장 수익이 나는 사업에 집중하고, 그 외에는 AI에 올인하는 중이다. 결국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수혜자는 오픈AI와 같은 앞선 AI 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나온 경력자들뿐이라는 것.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우수한 AI가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취업 장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나온 AI 모델의 성능이 뛰어나 초급 프로그래머를 뽑지 않고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굳이 고용해서 인건비를 늘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브라이언 교수는 이번 가을에 입학한 컴퓨터 전공 학생들이 4년 후에 졸업할 때는 완전히 다른 취업 시장을 만날 게 확실하다고 경고한다.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는데 이미 직장을 잃은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경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컴퓨터학과 교수 컴퓨터학과 교수 컴퓨터학과 졸업생들 학교 컴퓨터학과

2024-10-02

[디지털 세상 읽기] 로보택시는 오고 있을까?

무인택시 차량호출 서비스인 ‘로보택시’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진다. 우버는 궁극적으로 인간 운전기사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로 대체하고 싶어하고, 구글의 웨이모, 테슬라와 같은 테크기업들이 적극적인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뉴스 영상에서 보는 것과 달리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 로보택시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일까?   그동안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로보택시를 운영해온 웨이모는 최근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도 갈 수 있게 서비스 범위를 확장했다.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다면 이제 로보택시는 어디나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영업용인 로보택시는 우리가 사용하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이나, 현재의 자율주행차량보다 훨씬 더 철저한 지도 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이를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런 조건으로 지자체에서 허가를 내주기 때문이다.   아직 세계의 몇몇 도시에서만 로보택시를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율운전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이고, 지도의 업데이트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첨단장치를 부착한 웨이모의 로보택시 차량 가격은 한 대에 30만 달러가 넘는다. 이 모든 비용을 들여서 일반 택시와 비슷한 돈을 번다면 큰 적자가 나는 장사고, 따라서 현재 로보택시는 장기적 투자 차원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로보택시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새로운 기술은 보급과 함께 비용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사업성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로서는 택시 기사의 직업을 뺏는 로보택시의 도입을 지자체에서 서두를 정치적 이익도 없고, 이 시장에 뛰어들 만큼 자금력과 기술력이 충분한 기업도 많지 않다. 로보택시의 세상이 기대보다 천천히 오는 이유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무인택시 차량호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차량용 내비게이션

2024-09-04

[디지털 세상 읽기]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6일 연방법원이 구글이 독점기업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20여 년 동안 검색 시장을 장악해온 구글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법원은 구글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검색과 광고 시장에서 독점적 계약을 맺는 등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온라인 검색, 광고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구글의 독점 때문에 성장하기 힘들었던 각 분야의 경쟁 기업들은 이번 독점 판결을 반기면서도 판사가 구글의 독점 관행을 바꾸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한다. 경쟁사에게 중요한 건 독점 여부 자체가 아니라, 법원의 명령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분명한 효력을 갖느냐다. 가령 유럽 연합에서 구글 검색의 독점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후 사용자들에게 기기의 초기 설정 때 기본 검색 엔진을 선택하게 했더니 대부분 구글을 선택하면서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경쟁업체들은 이렇게 한 번 정한 후 바꾸지 않는 사용자들의 온라인 행동을 고려해, 결정을 내린 후에도 주기적으로 다른 검색 엔진의 옵션이 있음을 알리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구글이 다른 기업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을 주고 자사의 서비스를 애플 기기에 사전 설치하게 하는 등의 행위도 금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오래전에 이미 나왔지만, 구글은 재판에서 그런 계약이 독점을 의도한 게 아니라, 많은 사용자를 확보해서 구글의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함이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이 독점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문제는 법원이 그런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다. 게다가 구글은 이미 항소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독점 판결은 나왔지만, 재판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는 이유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재판 구글 검색 독점 판결 독점적 계약

2024-08-28

[디지털 세상 읽기] 공격 무력화하는 밈

올해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을 대신해 민주당의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가 등장과 함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특히 해리스가 지난해 했던 한 연설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커뮤니티의 영향을 받고 자란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기 어머니가 “그럼 네가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진 줄 아니?”라고 했던 걸 언급하며 깔깔 웃는 장면이 틱톡을 통해 바이럴이 되었다.   재미있는 건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 장면을 찾아내어 퍼뜨린 쪽이 경쟁자인 트럼프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웃음소리를 두고 “미친 사람 같다”고 공격하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해리스가 웃는 장면을 찾아낸 건데, 해리스를 지지하는 젊은 층에서 오히려 이를 좋아하면서 밈으로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퍼뜨려 해리스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격이나 비난을 피하거나 변명하는 대신 오히려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전략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먼저 사용했다.     당시 트럼프에 맞섰던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와 주변 인물에 대해 ‘끔찍하다(deplorable, 디플로러블)’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트럼프 지지자들은 비슷한 발음이 나는 제목의 영화 ‘익스펜더블’ 포스터에 트럼프와 주변 인물들의 얼굴을 넣어 밈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밈은 온라인에 빠르게 공유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트럼프 바람’를 일으키는 주역이 되었다.     줄곧 여론 조사에서 열세에 있던 트럼프는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누구나 경쟁자를 공격할 수 있지만, 공격을 무력화하는 밈을 만나면 결과는 완전히 반대가 될 수 있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이제 8년이 지나 다시 대선에 나선 트럼프는 이번엔 자기 쪽에서 시도한 공격이 거꾸로 해리스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목격 중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무력화 공격 트럼프 지지자들 당시 트럼프 주변 인물들

2024-08-21

[디지털 세상 읽기] 스탠퍼드 인터넷 관측소

온라인,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하는 허위 정보를 연구해 온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인터넷 관측소(SIO)가 해체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9년에 같은 대학의 사이버 정책 센터의 일부로 설립된 이 연구소가 세상의 관심을 끈 것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비밀 작전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다. 그 이후로도 중국이 클럽하우스 앱을 통해 감시 활동을 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인스타그램에서 확산하는 아동성착취물에 대한 고발 등, 소셜미디어 시대의 감시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스탠퍼드 대학교는 SIO가 해체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디렉터를 비롯한 주요 인물이 모두 떠나면서 문을 닫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스탠퍼드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정치권, 특히 올해 말 대선에서 트럼프를 후보로 내세워야 하는 공화당에서 오는 압력 때문이라는 설명이 우세하다. 미국의 보수 단체들은 SIO가 현 민주당 행정부와 모의해서 보수의 목소리를 억압한다고 주장해왔고, 연구원들을 여러 차례 고소하기도 했다. 따라서 스탠퍼드의 이번 결정은 정치권의 압력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이 SIO가 발행한 자료를 지목해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문제는 이런 일이 온라인 허위 정보를 구분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팩트 체크 기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미국에서 허위 정보를 체크하면 보수 단체에서 퍼뜨린 내용이 많기 때문에 “보수의 입을 막는다”는 비난을 듣는다. 대학교와 같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의 관찰과 분석이 필요한 이유가 정치적인 목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인데, 스탠퍼드 대학교 산하의 기관도 압력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온라인 정보는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스탠퍼드 인터넷 스탠퍼드 인터넷 스탠퍼드 대학교 인터넷 관측소

2024-07-04

[디지털 세상 읽기] 읽기 능력을 잃게 된다면

근래 들어 학생들의 문해력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경고가 많이 나온다. 단순히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이나 기사 같은 텍스트를 읽는 기술, 즉 읽기 능력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출판업계다. 책 판매 감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튜브처럼 초 단위로 보는 사람의 주의를 붙잡는 영상에 익숙하다 보니 사람들은 한 번에 수십 페이지씩 읽는 전통적인 독서를 지속할 만큼 집중하는 걸 힘들어한다는 주장도 있다.   읽기 능력의 감소를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면서 텍스트에 대한 의존도는 줄었을지 몰라도 흡수하는 정보의 양을 오히려 늘었다는 거다. 이미지와 동영상을 통해 압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단순히 텍스트를 매개로 하는 것보다 상상력은 덜 사용하겠지만, 더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동영상을 통한 정보 습득을 나쁘게만 볼 건 아니라는 거다. 젊은 층일수록 영상을 몇 배속으로 빠르게 보는데 이는 속독법과 다를 바 없다.   최근에 나온 책,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간은 글자를 읽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화 능력과 달리,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능력을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의 일이어서 인간의 뇌는 다른 용도로 진화된 기능을 읽기에 전용(轉用)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인구의 대부분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터넷의 확산 이전부터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읽기를 힘들어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어쩌면 텍스트를 주요 소통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은 인류 역사에서 짧은 기간에 불과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전달과 습득 그 자체이지, 그 수단이 아닐 수 있다. 봉화가 사라졌다고 해서 인류가 소통을 멈춘 게 아니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능력 대화 능력 읽기 능력 정보 습득

2024-06-16

[디지털 세상 읽기] 구글의 결정과…인터넷의 위기

시장을 주도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인 챗GPT에서 ‘GPT’라는 기술은 구글에서 처음 개발했다. 그렇다면 왜 구글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고도 오픈AI의 챗GPT를 뒤쫓는 처지가 되었을까? 구글의 사업 모델 때문이다. 구글은 검색 결과 페이지와 검색 후 사용자들이 찾아가는 웹사이트에서 광고를 노출해 돈을 버는데, AI가 한 번에 완벽한 답을 제시해버리면 클릭이 발생하지 않으니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글은 사업 모델을 보호하기 위해 챗GPT와 같은 제품 출시를 미루고 있다가 새로 열린 시장에서 출발이 늦었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오픈AI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구글은 지난주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검색 엔진을 완전히 바꿔 웹페이지를 일일이 보여주기에 앞서 AI가 만들어 낸 답을 ‘검색 생성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도 구글은 간단한 수학 문제나 기온처럼 “정답”이 분명한 질문에 대해서는 한 줄의 답을 보여주지만, 앞으로는 특정 웹사이트를 방문해야 하는 종류의 질문도 바로 AI가 대신 답을 하게 하겠다는 것.   사용자에게는 좋은 소식일지 모르지만,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을 떠받쳐 온 ‘검색-웹페이지 방문-광고 수익 발생’이라는 사업 모델은 끝난다. 앞으로 줄어들 온라인 트래픽을 생각하면 광고 수익을 기대할 수 없고, 이는 앞으로 인터넷 생태계가 전례 없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는 뜻이다.     구글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결정이지만, 인터넷은 중대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웹사이트들이 쓰러지고, 온라인 콘텐트가 줄어들면 AI는 뭘 읽고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처음에야 별 문제 없겠지만, 핵전쟁의 진짜 파괴력은 대규모 환경변화인 핵겨울에 있다는 경고처럼, 생태계가 바뀌어 AI가 섭취할 수 있는 온라인 정보의 생산이 줄어들면 결국 AI가 내놓는 답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인터넷 구글 인터넷 생태계 이후 인터넷 웹페이지 방문

2024-06-12

[디지털 세상 읽기] 테무와 알리바바

알리바바는 오래도록 중국 전자 상거래의 상징과 같았다. 바이두, 텐센트, 샤오미 같은 기업들이 포진한 중국의 빅테크 산업계에서 알리바바는 징동닷컴과 함께 중국 전자 상거래 시장을 사실상 개척하고 주도해왔다. 하지만 요즘 알리바바의 위상은 크게 변했다. 지난해 11월,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경쟁 서비스 테무의 위력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테무를 운영하는 기업 핀둬둬의 시가 총액이 알리바바를 제쳤다.   테무가 중국 전자 상거래 기업 시가 총액 1위를 달성하게 된 비결은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다. 알리바바의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과 유럽 등에서는 성장하고 있지만, 아마존이 장악한 미국 시장에서는 그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그런 미국 소비자들도 테무는 안다. 싼 가격으로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테무와 쉬인, 두 중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보내는 소포만 하루 60만 개라고 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다.   결국 핀둬둬의 시총은 중국의 생산자와 세계의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한 테무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를 대변하는 숫자일 뿐, 테무가 아무리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도 매출은 여전히 알리바바에 훨씬 못 미친다. 알리바바는 테무의 장점을 배워 반격을 준비하지만, 테무의 성장을 막는 건 업계 내 경쟁이 아닌, 미국과 EU의 무역 규제일 가능성이 높다. 테무가 이용해온 관세법의 구멍을 막으면 당장 이들 시장에서의 매출은 급감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규제는 테무만이 아니라,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 중인 알리바바의 매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 큰 그림에서 보면 중국이 ‘세계의 생산 공장’을 넘어 유통의 거인이 되려는 것을 다른 나라들이 허락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두 기업의 성장 가능성은 국제 정치적 변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알리바바 요즘 알리바바 해외 시장 테무가 전자

2024-05-19

[디지털 세상 읽기] 싸움톡의 기술

스마트폰이 가져다준 편리함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사람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게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앱이다. 메신저는 필요하면 전화처럼 동기화(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원하지 않을 경우 이메일처럼 비동기화 소통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그 이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를 말다툼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문자로 싸운다고 해서 영어로 ‘펙스팅(fight+texting)’이라 부르는 이런 소통법은 미국의 영부인 질 바이든이 남편을 떠나지 않는 경호원들이 듣지 않게 싸우는 방법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싸움이 좋은 건 아니지만, 갈등을 풀어야 할 때 말로 다투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답을 해야 하는 대면 대화와 달리, 원하지 않을 경우 답을 늦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말로 생각을 밝히는 데 익숙하지 않은 성격이라면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도 있다. 면전에서는 자존심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메신저에서는 뜻을 굽히기도 한다.   하지만 메신저로 싸우는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말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문장만으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은 말하는 사람의 음성의 크기, 얼굴 표정, 바디 랭귀지를 통해 의미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 문자에는 그런 요소들이 모두 빠지기 때문에 쉽게 오해를 부른다. 가령 “네”라고 짧게 대답한다면 흔쾌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기분이 상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네” “네네” “넵” “넹” 등의 다양한 표현을 개발하고, 이모지를 함께 넣어서 전달하는 이유가 그거다. 중요한 건 대면 대화와 메신저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해서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기술 비동기화 소통 대면 대화 자기 생각

2024-05-08

[디지털 세상 읽기] 한 전기차 기업의 곤경

미국의 전기차 제조기업 피스커는 2007년에 설립됐다. 당시만 해도 테슬라는 존재했지만, 일론 머스크가 합류하기 전이었고, 전기차 시장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작아도 꾸준한 관심을 모아온 회사였지만, 테슬라가 크게 히트하고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생산에 뛰어들면서 점점 관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절치부심하고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며 다시 관심을 끄는 듯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놓은 모델이 유명 인플루언서의 혹평을 받은 후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주에는 직원의 15%를 내보내며 파산의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문제의 리뷰를 한 인플루언서는 마르케스 브라운리라는 인물로, 전자 제품과 자동차에 대한 균형 있는 리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글의 임원이 “세계 최고의 테크 리뷰어”라고 극찬을 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피스커의 신차를 두고 “내가 리뷰해 본 차 중 최악의 차”라고 말하면서 인터넷에 큰 화제가 되었고, 회사의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스커는 이미 기업의 사정이 좋지 않았고,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모델의 성공이 절실했다. 그렇게 중요한 신차가 곳곳에 문제점이 가득한 채로 나왔으니 단순히 인플루언서의 탓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브라운리는 이에 대해 해명하는 영상을 만들어 자기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리뷰어들이 부정적인 리뷰를 했고, 제품의 문제를 정직하게 지적하는 것이 리뷰어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했다.   혹평을 접한 피스커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문제를 일부 해결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평가가 많다. 전기차가 처음 등장하던 시절에는 제품의 문제가 있어도 소비자들이 너그럽게 봐주지만, 이제 치열한 전쟁터가 된 전기차 시장은 그런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전기차 곤경 전기차 시장 전기차 제조기업 전기차 생산

2024-05-06

[디지털 세상 읽기] AI 전투기 조종사가 온다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국(DARPA)은 최근 AI가 조종하도록 개조된 F-16 전투기가 인간 조종사가 모는 전투기와 모의 공중전을 벌이는 테스트를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항공기가 아닌 시뮬레이션을 통한 가상 대결에서는 AI가 인간 조종사를 이긴다는 결과가 이미 2020년에 나왔다. 이번 테스트는 물리적인 비행에서도 같은 결과를 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고, 개조한 AI 전투기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인간 조종사 두 명이 탑승해있었지만, 실제 조종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과 AI 조종사 중 어느 쪽이 공중전에서 승리했는지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다음 단계는 아예 인간을 태우지 않는 AI 전용 전투기의 개발이고, 이는 이미 진행 중이다. 전투기를 인간이 조종할 경우 엄청난 중력 가속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AI 조종사는 그런 제한 없이 전투기의 성능을 마음껏 사용하게 해준다.   게다가 군의 관점에서는 전투기 조종사가 부담스러운 이유가 더 있다. 일단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고, 만약 이들이 실제 전투에서 격추될 경우 구출하는 작전에도 큰 비용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은 앞으로 인간 조종사가 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대신, 이들에게 여러 대의 드론 전투기를 지휘하는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전투기 조종사 대의 전투기 ai 전투기 인간 조종사

2024-04-24

[디지털 세상 읽기] AI가 중산층을 살릴까?

생성형 AI가 몰고 온 충격과 공포는 궁극적으로 직업의 문제로 수렴된다. 공장 노동자를 대체한 과거의 자동화와 달리, 일반 사무직은 물론이고 전문직까지 위험하다는 경고가 그렇다. 중산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다른 전망을 내놓은 MIT의 경제학 교수 데이비드 오토어의 ‘소수의견’을 소개했다. 기술과 세계화가 노동자의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오토어는 지난 30년 동안 진행된 컴퓨터화가 기업이 대졸 인력을 선호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는 논문의 저자다.     그는 의사, 변호사처럼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준전문가들이 전문 지식을 흡수한 AI를 사용해서 전문가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이들의 임금이 상승해서 오히려 중산층이 더 증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의료, 소프트웨어, 교육, 법무 서비스는 비용을 낮추면 더 확장 가능한 분야라서 이런 준전문가들을 통해 고객군을 훨씬 더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오토어의 주장이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 AI를 사용해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 과연 업계가 더 많은 보상을 하겠느냐는 것.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 늘어난 생산성에 기업이 더 큰 보상을 한 전례가 없다는 게 그 반론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중산층 기술과 세계화 공장 노동자 의료 소프트웨어

2024-04-15

[디지털 세상 읽기] 틱톡 금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은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반대가 혐오 수준으로 커지던 때였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의 탓으로 돌리던 트럼프는 중국이 만든 인기 소셜미디어 앱 틱톡이 사용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미국 여론에 영향을 행사한다며 사업을 미국 업체에 매각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당시 우여곡절 끝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틱톡 금지령’이 미국의 선거철을 맞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가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면 서명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다시 꺼냈기 때문이다.   틱톡은 인도 등 세계 20여개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 인도처럼 전면 금지한 곳도 있지만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은 정부 소유의 모바일 기기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틱톡 앱을 깔면 기업이 이를 통해 정보를 빼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취한 조치이지, 아직 그런 사례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열렬한 사용자들을 가진 앱을 정부가 금지할 수 있느냐는 반발도 거세다. 미국에서도 정치권이 다시 틱톡 금지를 이야기하자 많은 사용자가 의원들에게 전화해서 틱톡을 막지 말라는 ‘풀뿌리 로비’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시진핑의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기 때문에 법안 통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바이든은 틱톡을 통해 대선 선거운동을 하고 있어서 위선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틱톡을 공격하며 금지, 매각을 추진했던 트럼프는 바이든이 이 이슈를 다시 꺼내 들어 선점하자 말을 바꿔서 틱톡을 금지하지 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전면 금지한 인도의 예를 보면 갈 곳을 잃은 틱톡 사용자들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나온 유사 서비스로 몰리는데, 트럼프는 자신이 항상 껄끄럽게 생각하는 실리콘밸리 플랫폼에 손님을 몰아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틱톡 금지 열중인 친구 틱톡 금지 친구들 모두

2024-03-13

[디지털 세상 읽기] 음반업계가 주는 교훈

챗GPT, 달리와 같은 생성 AI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오픈 AI가 이번에는 동영상을 생성하는 AI인 소라를 선보여서 업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단 몇 줄의 프롬프트로 1분짜리 고퀄리티 동영상을 만들어 내는 소라는 동영상 제작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콘텐트 제작 업계는 값싼 AI 콘텐트에 밀려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걸까?    음반 업계가 하나의 답을 보여 준다. 일 년 전, AI가 인기 가수 드레이크와 위켄드를 완벽하게 재현한 새로운 곡을 내놓으면서 음반 업계를 긴장시켰다. 두 가수가 소속된 세계 최대의 음반사 UMG는 곧바로 이 콘텐트의 유통을 금지했지만, 새로운 기술의 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테크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AI가 만든 콘텐트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한편, AI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트 제작을 더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해 창작자들에게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돈 워스는 이 도구를 사용해서 AI가 자신의 스타일을 적용한 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충격과 함께 큰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가 직접 작업할 경우 컨디션에 따라 품질이 달라질 수 있지만, “생성 AI를 사용하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나 자신과 함께 일하는 것과 같다”라는 것이다.   생성 AI는 궁극적으로 도구이기 때문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이용할 때 비로소 최고의 결과를 내놓는다. 따라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시각이 아니라, 전문가가 자신의 실력을 초인적으로 키울 수 있는 무기가 생겼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생산박적인 태도일 수 있다. 저작권에 민감한 음반 업계가 AI를 완전히 금지하거나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대신, 창작자를 돕는 도구로 만드는 자세는 다른 창작 업계가 참고할 만하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음반업계가 교훈 콘텐트 제작 동영상 제작자들 음반 업계

2024-03-03

[디지털 세상 읽기] 온라인 선거개입 위협

미국의 차기 대선이 약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온라인에서 가짜 뉴스를 통한 선거 개입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위협은 세계 모든 국가의 문제이지만, 특히 미국의 경우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크기에 해외 세력이 미국의 정책을 바꾸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가령, 현재 공화당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그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한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도 러시아가 개입했거나 개입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기에, 이번에도 같은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전쟁에 퍼붓고 있는 돈보다 훨씬 더 적은 투자로 상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6년과 달리 이제는 발전된 AI 기술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기에 페이스북을 비롯한 대형 플랫폼들이 이런 개입 시도에 대한 감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트위터에서 신뢰·안전 글로벌 책임자로 일하다가 일론 머스크가 해고해서 유명해진 요엘 로스도 AI를 활용한 가짜 뉴스 공격을 경고하는데, 최근 한 콘퍼런스에 등장한 그는 현재 어느 플랫폼이 가장 열심히 대비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의외로 틱톡의 노력이 눈에 띈다”라고 대답했다. 틱톡은 중국에 모기업이 있기 때문에 미국 사용자 감시와 여론 조작 의혹을 꾸준히 받아온 회사이고, 실제로 기자의 폰을 추적한 정황이 밝혀져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 기업이 미국 기업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된 이유가 뭘까.   지난 1~2년 동안 틱톡만큼 미국 정부와 언론, 여론의 감시를 받아온 플랫폼도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기업 혼자만이 아닌 사용자와 사회가 감시와 참여를 통해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선거개입 온라인 온라인 선거개입 온라인 플랫폼 사용자 감시

2023-10-20

[디지털 세상 읽기] 애플 매장 습격 사건

지난주 미국 필라델피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애플 매장에 수십 명이 몰려들어 진열품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다. 요즘 미국 일부 대도시의 치안이 악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시간에 버젓이 들어와 물건을 훔치는 일이 잦아지고 있기에, 고가 기기를 전시하는 애플 매장이 표적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애플 매장이 털리는 일은 흔치 않다. 왜일까.   그 이유는 도난 사건 직후 소셜미디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애플 매장은 도난 기기들의 제품번호를 찾아 재빨리 원격으로 잠가버렸고, 해당 기기는 사용 불능의 ‘벽돌’이 되었다. 기껏 훔쳤는데 쓸 수도, 팔 수도 없게 된 절도범들이 화가 나서 훔친 제품을 바닥에 던지는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절도죄로 잡힐 것을 각오하고 저지른 범행에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것이다.   점점 많은 기기가 OTA(over the air), 즉 원격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예전 같은 단순 절도, 장물팔이가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에는 자동차도 포함된다. 테슬라의 경우 OTA 방식으로 모든 차량이 본사와 연결될 뿐 아니라, 차량 전후좌우에 카메라가 부착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차량 절도범이 테슬라에 손을 대는 일이 드물고, 덕분에 다른 차량에 비해 도난율이 현저하게 낮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고가의 테슬라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주차 차량의 표면을 몰래 긁다가 촬영된 영상이 공개되고 경찰에 잡히는 사례가 속속 알려지자 테슬라는 건드리면 안 되는 차로 인식된 것이다. 애플에는 이번 습격 사건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득이 될지 모른다. 애플 매장을 털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는 사실을 잠재적 범죄자들이 알게 되었을 테니까….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애플 매장 매장 습격 차량 절도범 이번 습격

2023-10-06

[디지털 세상 읽기] 네타냐후 vs 머스크…AI가 세상 바꾸나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공장을 방문해 일론 머스크를 만났다. 이런 만남을 할 때는 양쪽이 서로 필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사법부 개혁을 추진하면서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네타냐후 총리는 자기 행동을 변호할 기회가 필요했고,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반(反)명예훼손연맹(ADL)을 공격해서 비난받는 머스크에게는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서 자신이 반유대주의자가 아님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무난하게 끝날 듯했던 대화는 최근 머스크가 시작한 AI 스타트업 얘기로 이어지면서 흥미로워졌다. 네타냐후는 머스크에게 AI가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머스크는 AI의 긍정적 미래를 강조했지만, 네타냐후는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AI가 큰 부를 창출해도 결국 소수의 기업에 집중될 뿐 소득 격차는 더 커질 게 분명하다는 것. 네타냐후는 더 나아가 AI 기술이 마치 “석기시대 사회가 핵무기 기술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보도한 애틀랜틱은 원래 네타냐후는 인류 사회를 신뢰하지 않고 비관적 미래 전망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의 전망은 대체로 맞는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가령 2011년, 아랍의 봄 시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퍼졌을 때 이를 응원한 서방 세계의 지도자들과 달리 네타냐후는 시위의 결과로 이 지역의 정치는 오히려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결과적으로 그의 전망이 맞았다는 것이다.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 전망과 이를 의심하는 비관론자의 전망, 어느 쪽이 맞을지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네타냐후 머스크 네타냐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일론 머스크

2023-10-02

[디지털 세상 읽기] ‘로봇이 아닙니다’

온라인에서 새로운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로그인할 때 우리가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스팸봇의 침입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절차다. 처음에는 캡차(CAPCHA)라고 해서 복잡하게 뒤틀린 글자와 숫자를 읽어내게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몇 년 만에 퇴출당했다. 컴퓨터 프로그램(로봇)은 AI의 발전으로 이를 풀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구글지도의 스트리트 뷰를 타일로 쪼개고 횡단보도, 혹은 신호등이 있는 칸을 모두 선택하라는 ‘리캡차’가 사용되었고, 요즘에는 더 간단하게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텍스트 옆에 있는 박스에 클릭으로 체크 표시만 하면 되는 ‘노캡차 리캡차’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너무나 간단해서 정말 로봇을 잡아낼 수 있을까?   비결은 클릭이 아니라 커서의 이동에 있다. 사용자는 클릭하기 위해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이걸 사람이 할 경우 커서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지만, 로봇이 움직이는 커서는 직선이라는 것. 하지만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이 작업을 사람에게 시키면? 구글은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그 사용자의 인터넷 방문 기록을 파악한다. 특정 사용자가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하면 불허하는 식이다. 이 방법이 워낙 효과적이어서 리캡차 최신 버전에서는 아예 체크 절차도 생략하기로 했다. 사용자의 방문 기록만으로 로봇과 클릭 노동자를 잡아낼 수 있다. 구글이 우리의 기록을 들여다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로봇 특정 사용자 클릭 노동자 방문 기록

202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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